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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요리

가마솥에 밥 잘 짓는 비법은?

쌀을 잘 불린다. 한 시간 이상 불리는 게 좋다. 씻어서 불려도 되고 불려서 씻어도 된다. 잘 불린 쌀과 물, 부피 비율 일대 일로 안친다. 

 

쎈불로 땐다. 끓을 때까지 쎈 불이다. 문제는 쌀 뜨물은 화다닥 폭발하듯이 끓어 넘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이게 골치다. 반드시 옆에서 지키다가 재빨리 주저하지 말고 가장 작은 불로 줄여주어야 한다. 이게 포인트다. 가장 작은 불로 3~5분 정도 두면 쌀이 물을 다 먹는다. 그래서 더 이상 끓어 넘치지 않게 된다. 쌀한테 물먹이는 시간, 요게 핵심 노하우되시겠다.

 

쌀이 물을 다 먹어서 이제 끓어 넘치지 않겠다 싶으면 다시 센 불로 땐다. 중간 불도 좋다. 이제 쌀을 본격적으로 익히는 시간이다. 가마솥 뚜껑 사이로 실실 피어오르는 수증기에서 맛있는 밥 냄새가 나면 다시 불을 가장 작게 줄인다.

 

작은 불로 뜸 들이는 시간. 가장 작은 불로 오래 두면 바닥이 눑는다. 누룽지가 생긴다. 나는 누룽지를 엄청 좋아한다. 막 밥을 짓고 긁어 먹는 따끈따끈한 누룽지는 얼마나 고소하고 바삭하고 부드럽고 맛나던가!!! 누룽지 먹을라고 밥을 한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누룽지를 쉽게 긁으려면, 다 된 밥을 다 퍼내고, 나무주걱으로 싹싹 긁어서 깔끔하게 밥풀을 없앤다. 다시 솥을 불 위에 얹고 밥풀이 마를 때까지 가장 약한 불로 때준다. 그러면 누룽지가 솥에서 일어난다. 긁기 쉬워진다. 

 

긁을 수 있는 누룽지를 다 긁고 남는, 옆구리에 눌러붙어서 안 떨어지는 녀석들은 물을 적당히(누룽지 긁은 자리 만큼 정도) 부어서 끓여주면 잘 떨어진다. 숭늉 긇여 마시면 좋다. 이때도 끓어 넘칠 수 있으니 그러지 않게 조심. 일단 끓으면 불을 줄여준다. 옆구리에 눌러붙은 녀석들을 긁어서 물 속에 넣고 잔불로 오래 자글자글 끓이면 숭늉 맛이 좋아진다. 

++ 

살면서 가장 중요한 건 먹는 누가 뭐래도 일. 대한민국땅 가장 넓은 평야지대에 태어나서 내가 가장 많이 먹은 건 두 말할 것도 없이 쌀밥이다. 

우리가 먹는 쌀은 자포니카 쌀이라 불리는 비교적 길이가 짧고 토실하며 찰진 품종이다. 전세계적으로 보자면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먹는 특별한 쌀이다. 쌀을 주식으로 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안남미라 부르는 가늘고 기다랗고 푸석한 인디카 쌀을 먹는다. 국제 곡물 시장 가격도 인디카 쌀이 더 비싸다. 

어쨌거나 나는 기름기가 좰좰 흐르는 찰진 쌀밥을 모든 음식 중에 가장 좋아한다. 어떤 음식을 먹어도 밥과 함께 먹어야 맛있게 느끼는 밥돌이다. 요리가 아무리 맛이 있어도 밥이 맛이 없으면 맛이 없다. 요리가 별로 맛이 없어도 밥이 맛이 있으면 맛이 있다. 밥맛을 결정하는 건 무엇일까? 쌀이다.

 

첫번째는 신선도다. 수확한 때부터 얼마나 되었느냐? 도정한 때부터 얼마나 되었느냐?

두번째는 여물기다. 제대로 충분히 잘 자라서 완숙되었느냐? 병충해 입지 않고 잘 익었느냐?

세번째는 품종이다. 품종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다. 취향에 따라서 맛을 다르게 느낄 수 있다. 나는 신동진이나 오대쌀을  맛있게 먹는다. 

네번째는 선별이다. 좋은 걸 잘 골라 담았는지? 이거저거 섞어버렸는지? 그러면 밥맛이 떨어진다.  

 

저 멀리 들판 너머 지평선 위로 희미하게 모악산 윤곽이 보이던 만경평야 한켠, 고향집 부엌 가마솥에서 밥냄새가 솔솔 풍기다가 마침내 커어다란 가마솥 뚜껑이 자그르르 열리고 머리 수건을 쓴 엄마, 훅 피어오르는 수증기 사이로 밥알은 으깨지지 않고 김만 휙 휙 다 빼버리는 나무주걱 휘젓기 신공이 시전되고, 산처럼 솟은 고봉밥 밥주발이 하나 둘 부뚜막에 놓이는 동안. 꼴깍꼴깍 군침 흘리던 어린 날의 추억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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