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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참회록] 그때까지 배운 어떤 것도 믿지 않게 되었다

세계적인 대문호 레오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는 우리 나이로 83세까지 살았다.

그가 참회록을 쓴 때는 51세(1879년)~54세(1882년) 때다.

중년에 닥치는 질풍노도의 시기라 할 수 있겠다.

이때쯤 그는 인생의 활로를 찾지 못 하고 오직 자살할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

아마도 갱년기였을 것이다.

남성의 갱년기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갱년기를 뚜렷이 겪고 인지하는 경우가 있고

모르고 쉽게쉽게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사십대 중반 무렵에 갱년기를 겪는 경우도 있고

오십대 초반이나 중반 무렵에 겪는 경우도 있다.

어쨌건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사십대 중반에 심한 위기를 겪었다.

그때 나보다 나이 많은 남성을 만나면 무조건 물었다.

"당신도 사십대 중반을 넘기가 이토록 힘들었습니까?"

사람마다 달랐다.

내가 물어본 사람 중 삼분지 일 정도가 나와 비슷했다. 

삼분지 일 정도는 겪은 적이 없다고 했다.

왜 누구는 아주 심하게 겪고 누구는 하나도 안 겪고 지나가는가?

불공평하지 않은가?

그렇다. 인생은 어차피 불공평하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억울해하다가 문득 통계를 찾아보고,

같은 해에 태어나 먼저 죽은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며

나는 나를 위로하고 견뎠다. 

때가 있다.

계속 그렇진 않다.

홀몬 때문이다.(내 탓이 아니다.) 

걷고 요가하고 홀로 춤추고 밀폐된 곳에서 큰 소리를 지르고 인생에 처음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춤이나 발레나 뮤지컬 같은 몸에서 뿜어 나오는 역동적인 힘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공연을 자주 보고

시각적인 자극을 주는 좋은 그림과 조각 등의 전시를 많이 보는 게 큰 도움이 됐다.

내가 갱년기를 지나며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몸이 마음이다.

몸을 하늘처럼 섬기고 살아야 한다.

몸을 돌보면 마음이 좋아진다.

몸의 오감, 다섯 감각에게 좋은 먹이를 줘야 한다.

**

<참회록> 첫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그리스 정교의 세례를 받았으며 이 신앙으로 성장했다.

유년 시절부터 청년 시절까지 나는 이 신앙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대학 2학년을 중퇴하던 무렵인 십팔 세 때 나는 그때까지 배운 어떤 것도 믿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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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열 여덟 살이면 우리 나이로 스무 살이다, 대학 수업을 중단해버리고

그때까지 배운 모든 걸 다 폐기처분했다는 얘기가 내 폐부를 깊숙이 찔렀다.

첫 구절을 보면서 눈물이 왈칵 날 뻔 했다. 

동시에 헛하는 단발성 웃음도 터졌다. 

문제적 개인의 탄생이다.

나역시 대학 2학년 때 휴학하고 유교적-가부장적-권위주의적-집단주의적-능력주의 등에 기반한

도덕관념과 반공사상 등 성장기에 주입 받은 사회 지배 이념을 마치 사리를 뽑아 내는 듯한 진통을 겪으며 다 게워냈다.

다 게워냈다? 물론 젊은 치기가 한몫한 것이겠지만 나는 어쨌거나 당시에 모두 게워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은 단절이다.

순탄치 않은 삶이 이때 이미 예고 돼 있었던 거다. 

**

젊은 시절 이미 세계적인 스타의 반열에 올랐던 톨스토이 같은 사람이

오십대 초반 밀려드는,

저토록 극심한 우울을 겪어내야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나 같은 사람에겐 큰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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